프리드리히 횔덜린

J. Ch. F. Hlderlin(1770~1843)1770년 3월 20일 라우펜에서 출생한 시인 횔덜린. 그는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로부터 ‘시인 중의 시인’이라는 찬탄을 받을 정도로 인간의 존재근원을 향해 끊임없이 출항의 돛을 올렸던 언어의 항해사였다. 튀빙엔 대학 시절에 친구인 헤겔, 셸링으로부터 얻은 철학적 안목은 그의 시를 성숙시킨 결정적인 자양분이 되었다.
이 훌륭한 철학자들과 정신적으로 교류하는 동안 횔덜린은 ‘신성(神性)’의 위대함과 자연의 순수함에 눈을 뜰 수 있었다. 특히 그가 ‘디오티마’라고 칭송했던 여인 주제테 공타르는 ‘사랑’의 의미를 가르쳐준 정신적 반려이자 그의 시에 풍부한 서정의 샘물을 공급해준 창작의 원천이었다. 횔덜린은 신의 사랑을 민중에게 선물처럼 안겨줌으로써 자유의 문을 열고자 했던 혁명적 시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은 아웃사이더’라는 말처럼 당대 독일의 보수적 정치체제와 불화를 겪어야만 했던 그는 무려 38년 동안이나 정신병을 앓다가 1843년 튀빙엔의 목수 찜머의 집에서 고뇌의 짐을 내려놓은 채 평온한 잠에 들었다. 시대가 시인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시인이 시대로부터 등을 돌려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내면의 여행을 떠난 것이다.